5월 초 짧은 연휴 마지막 날,
딸아이를 학교 기숙사까지 데려다주고 추석 귀경길 같은 고속도로에 접어들기 전 심신을 달래줄 책을 찾는다.
내가 책을 선택할 때 ‘상점 시리즈’, ‘수상한’ 제목이 붙은 책들은 가급적 기피하고 있다. 그래도 상위권에 랭크된 책 중 100명 이상의 댓글은 반신반의하며 ‘수상한 한의원’을 펼쳐 들게 만들었다.
나의 독서 방법으로는 어느 하나를 고집하지 않고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등 다양한 매체로 책을 접한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이동 중일 때는 오디오북은 최적의 독서 친구가 되어 준다.
특히 전문 성우들의 연기는 글로 표현 못할 감정이입을 도모하고 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렇다고 종이책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다.
오디오북과 종이책 또는 전자책을 병행할 때가 종종 있다. 이는 오디오북과 종이책의 진도가 꽤 차이 나기 때문에 외출 시에는 오디오북을 이용하고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전자책이나 종이책을 병행하기도 한다. 만약 러닝타임이 10시간의 오디오북이라면 오디오북만 이용하면 10시간 그대로 소모되지만 책과 병행하면 절반으로도 줄일 수 있다. 심지어 그 감정 그대로 이어지는 걸 느낀 후부터는 병행독서를 즐겨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디오북을 접하며 책과 병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책 속에 빠져 들어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다.
‘어?! 이거 재밌는데?’라고 느끼기 시작하면 이동이 끝나고도 한참을 책에 빠져 오디오북을 듣게 된다.
내게 이런 책들이 몇 권 있다.
‘고구려’, ‘나의 아름다운 정원’, ‘불편한 편의점’, ‘유괴의 날’, ‘가재가 노래하는 곳’, ‘마담 타로’ 등 이런 책들은 이야기 속에 한 구석에서 함께 하는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수상한 한의원
잘 나가던 한의사가 한순간 몰락하며 서울의 대형 한방 병원에서 쫓겨나 시골 마을로 내려와 한의원을 차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초반 지루함이 몰려올 만도 한데 이상하게 집중이 잘된다.
쉽고 간결한 문장과 적절한 장면 전환 들은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항상 내용은 일체 모르고 책을 접하기에 제목과 표지로 짐작해볼 수 있었던 건,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상처를 위로해 주는 전형적인 상점 시리즈려니 생각했다.
아니었다.
일단, 귀신이 나온다. 그리고, 주인공과 명콤비를 이룬 간호사의 연기는 박장대소를 불러온다.
그렇다고 위에 잠시 언급한 환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은 귀신들의 가슴 아픈 사연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모처럼 귀가 열리며 오감으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아무튼 외출하고 돌아와서도 한참을 오디오북에 빠져 있긴 아주 오랜만이다.
어찌 보면 뻔한 내용일 수 있지만 성우 분들의 연기력 또한 한층 더 재미를 불어 넣어 준다.
재미 뒤에 몰려오는 감동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렇게 복선이 깔려 있었것만 짐작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감동과 밀려오며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그동안 읽은 책들 중에 드라마화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한 일부 책들은 역시 드라마로 선보였고, 이 책도 드라마로 만들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몰고 온 열풍 이후로 비슷한 표지와 제목들은 내게 기피 현상을 심어주었다. 덕분에 많은 책들을 알게 모르게 외면하고는 있지만 극심한 책태기에 빠진 근래 막힌 곳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뚫어뻥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한껏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 본다.
아무튼 재밌다!
• 한 줄 요약 : 오감이 열리는 재밌는 귀신 이야기